작성일 : 18-10-12 17:11
‘단풍과 화냥기’에 지친 이들에게···
 글쓴이 : 我詩我
조회 : 9   추천 : 0  

‘단풍과 화냥기’에 지친 이들에게···

 

단풍이란 무엇인가

 

1961년 경향신문에 실린 단풍놀이 광고.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1961년 경향신문에 실린 단풍놀이 광고.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작가는 물들어가는 나뭇잎을 보고 왜 하필, 여자, 예쁘게 단장을 하고는, 줄 마음도 없으면서 굳이 나를 유혹하고, 떠날 준비를 하는, 그런 여자를 떠올렸을까요.

 

그것은 작가만이 알 것입니다.

 

‘단풍과 화냥기’에 지친 이들에게···단풍이란 무엇인가

 

사람마다 감상은 달랐을 것입니다. 작가의 ‘시상’에 공감 않는 사람들은 분노를 표시했습니다.

 

여성을 ‘순진한 남성을 유혹해 술독에 빠뜨리는 존재’로 봤고, ‘화냥기’라는 표현이 그 어원과 사용된 맥락에서 모두 여성혐오적이라는 게 주된 비판의 지점입니다.

 

논란이 일자 작가는 댓글을 통해 이같이 해명했습니다.

 

위 단풍이라는 제목의 글에 쓴 화냥기라는 표현은 단풍의 비극적이면서도 해학적이면서 처절한 아픔까지 함유한 단어를 선택하려는 의도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다는 둥 여성을 비하했다는 둥 하는 비난은 제 표현력이 부족한 결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여성을 비하할 의도나 남성우월을 표출할 의도는 추호도 없었습니다.

 

단풍이 등장하는 몇몇 작품을 소개합니다. 혹여 이 한 주간 마음을 다치셨다면 회복하시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단풍과 화냥기’에 지친 이들에게···단풍이란 무엇인가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제목은 지난 추석연휴 많은 독자님의 사랑을 받았던 김영민 칼럼에서 빌려다 썼습니다.

 

1988년 경향신문에 실린 단풍지도.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1988년 경향신문에 실린 단풍지도.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혼자 가는 먼 집, 허수경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

 

■ 훗날 훗사람, 이사라

 

봄날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꽃다발 한목숨 바치는 것으로 될까!

 

훗날 훗사람을 위해
우리들 다 바치는 것으로 될까!

 

그래도, 그러는 사이에도
한세상 또 한세상

 

말없이 누구나 단풍 들고 낙엽 지고
말없이 봄볕 들고 새순 돋는다는 다정한 말,
나는 믿는다!

 

첫 울음소리 다시 들리는 날이다.

 

■ 사려니숲길, 오광석

 

칼날들이 떨어진다

불타는 칼날들이 대지를 태운다

타오르는 대지를 가로질러

숲으로 가는 길

붉은 길을 걷는 사람들이 보인다

다가오는 겨울을 피해

숲으로 들어간 사람들

시린 눈이 내리고 나면 대지가 식을까

봄을 기다리던 시절

대지의 피를 받아먹은 나무들이

마지막 칼날들을 쏟아 내면

나무들 중간중간에 박히는

사람들의 벌개진 눈

살려는 사람들이 숨은 숲

다 타다 버린 세월만

반쯤 쓰러져 말라 가는 길을

사람들이 다시 걷는다

떨어진 칼날들 위로 웃음소리가

토벌군마냥 덮친다

그 사이에 쉬쉬하고

숨은 사람들의 숨소리가 들린다

소근소근 귀엣소리가

나무 사이로 들린다

 

■ 병(病), 기형도

 

내 얼굴이 한 폭 낯선 풍경화로 보이기

시작한 이후, 나는 주어(主語)를 잃고 헤매이는

가지 잘린 늙은 나무가 되었다.

가끔씩 숨이 턱턱 막히는 어둠에 체해

반 토막 영혼을 뒤틀어 눈을 뜨면

잔인하게 죽어간 붉은 세월이 곱게 접혀 있는

단단한 몸통 위에,

사람아, 사람아 단풍든다.

아아, 노랗게 단풍든다.

 

■ 오-매 단풍 들겄네, 김영랑

 

“오-매 단풍들것네.”

장광에 골붙은 감닙 날러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리니

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들것네.”

 

■ 단풍, 이상국

 

나무는 할 말이 많은 것이다

그래서 잎잎이 마음을 담아내는 것이다

 

봄에 겨우 만났는데

가을에 헤어져야 하다니

 

슬픔으로 몸이 뜨거운 것이다

 

그래서 물감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계곡에 몸을 던지는 것이다

 

■ 나뭇잎 하나, 김광규

 

크낙산 골짜기가 온통

연록색으로 부풀어 올랐을 때

그러니까 신록이 우거졌을 때

그곳을 지나가면서 나는 미처 몰랐었다

 

뒷절로 가는 길이 온통

주황색 단풍으로 물들고 나뭇잎들

무더기로 바람에 떨어지던 때

그러니까 낙엽이 지던 때도

그곳을 거닐면서 나는 느끼지 못했었다.

 

이렇게 한 해가 다 가고

눈발이 드문드문 흩날리던 날

앙상한 대추나무 가지 끝에 매달려 있던

나뭇잎 하나

문득 혼자서 떨어졌다

 

저마다 한 개씩 돋아나

여럿이 모여서 한여름 살고

마침내 저마다 한 개씩 떨어져

그 많은 나뭇잎들

사라지는 것을 보여 주면서

 

■ 북한산에 첫눈 오던 날, 최영미

 

미처 피할 새도 없이

겨울이 가을을 덮친다

 

울긋불긋

위에

희끗희끗

 

층층이 무너지는 소리도 없이

죽음의 삶의 마지막 몸부림 위에 내려앉는 아침

 

네가 지키려 한 여름이, 가을이, 한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가는구나

 

내일이면 더 순수해질 단풍의 붉은 피를 위해

 

미처 피할 새도 없이 첫눈이 쌓인다

 

최미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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